단전호흡 중에 정기신 통일이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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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

단전호흡 중에 정기신 통일이 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지요?


답변:

모든 수행의 근본핵심은 바라보기


단전호흡을 한다는 것은
내관을 하여 의식을 집중하고
아랫배로 숨을 고르며 깊은 호흡을 하는 것이다.

‘내관하여 호흡에 집중한다.’ 함은
초보자가 심호흡법과 집중법을 터득하기 위해
눈을 깊이 감고
아랫배에 의식을 모으고
호흡이 들고 나는 것을 바라보면서
몸과 마음을 고른다는 의미다.

내관이란 무엇인가?
일상생활 속에서 의식과 눈이 밖을 향해 있었다면
이 밖으로 향해있던 마음을 안으로 돌려
의식과 시선을 내면으로 향한다는 의미가 되겠다.

우리는 살아오면서  
자신을 향해 마음을 돌보기보다는
남에게 또는 밖을 향해 마음을 쓰기에
급급해 왔던 것이다.
남들은 나를 어떻게 볼 것인가?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들에게 비쳐질까?
나를 어떤 인격으로 남들이 평가할까?
이렇게 타인의 말이나 여론에
온 마음을 쓰며 살아간다.
물론 어떤 사람이
관심의 대상이 되거나 질투의 대상이 되면
온갖 험담이나 음모,
그리고 비난의 대상이 되기 쉬운
이 혼탁한 세상을 살아갈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다.
이 시대에 남들의 시선을 전혀 무시하며 살기란
보통 내공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을 것이다.
우리 같은 수행인도 온갖 비난이나 모함,
만들어낸 황당한 험담의 소용돌이에 휩싸이기도 하는데
하물며 연예인이나 정치인, 유명인이야 오죽하겠는가?
그런데 참으로 묘한 것은
인격을 말하고 고상한 척 하는 사람,
남들이 봐도 존경스럽게 보이는 사람,
잘난 척 하는 사람,
상처가 많아 자존심으로 똘똘 뭉친 사람....
이런 사람들이 남 모함하고 협잡하고
질투에 목숨을 거는 건 사실이다.
그리고 거짓인 줄 알면서도
맞장구치며 손뼉 치는 참 못난 사람도 많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이 지구는 참 재미있고 우스운 별나라인 동시에
천국이고 지옥이다.
찡그리며 화낼 필요 없다.
코미디 같은 세상,
크게 한 번 웃으며 즐겁게 살면 된다. 
지옥을 고르지 말고 천국을 선택해서 살아갈 권리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우리는 천부적으로 부여 받았다.
더구나 수행인이라면
세상의 험담이나 모함의 한가운데 몰리더라도
무심하고 무관심하며 무시할 수 있어야 하지만
그렇지 못한 수행인도 많다.
하물며 보통사람들이나 연예인들이야  
허깨비를 부여잡고 몸부림치며 고통스러워하고
반발하고 반격하다 지쳐
자학하는가 하면  
심지어는 자살까지 한다.

이런 세상이다 보니
자신을 향해 의식을 돌리기보다는
남들에게 관심을 쏟으며 의식해야 하고
여론에 신경을 쓰며 밖을 향해 기력을 소모하고
이것이 습관이 되어 과도하게 늘 떠돌며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모든 고통의 시작이다.

이러한 고통에서 벗어나기 위해
습관을 바꾸고 마음을 바꾸고 행동을 바꾸기란 쉽지 않다.
몸을 바르고, 숨을 고르고, 마음을 닦으며,
자신을 향한 내면으로의 여행을 통해
진정한 평안을 얻고 지혜를 구하하려는 것이
선도라는 수행 체계인 것이다.

왜 자신에게 마음을 돌리고
의식과 눈을 내면으로 향하는 것일까?
자신이 곧 지혜고, 우주이며, 깨우침이기 때문이다.
남이나 여론이나 밖에서는
결코 진리를 찾을 수 없다는 것이 현인들의 지혜다.


1. 단전호흡의 기본은 ‘바라보기’

단전호흡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관법> 즉, ‘바라보기’다.
많은 단체에서
호흡을 가르친다고 아랫배를 부풀리고,
호흡을 길게 하라하고,
항문을 조였다 풀었다하라 하고,
여러 가지 기법들이 참 많다.
심지어는 마음을 다스린답시고 마음을 씻어내려 하고,
정신을 가다듬는다고 명상을 가르치고,
심지어는 정신이 두뇌에 기인한다고 뇌수련을 하기도 한다.

세상에는 수많은 수행법이 있다.
성명쌍수라는 육체적 정신적 건강을 넘어
깨달음을 얻기 위한 선도의 단전호흡,
정신적 깨달음을 위한 불교의 참선,
그리고 종교적 신념이 수행이 된
인도의 각종 명상법과 아랍의 수피즘이 있다.
이 외에도 수 만 가지 수행법이 있다.

많은 수행법들이
공통적으로 매우 중요한 기법으로 행하는
방법 중의 하나가 바로 호흡이다.
호흡은 정신 상태와 건강과도 직결되어 있고,
숨은 생명을 이어주는 통로로서
살아있는 사람이면 누구나 하고 있기 때문이다.
때문에 호흡은 육체를 제어하고
마음을 다스리고
지혜를 구하기 위한 가장 효과적인 수단으로
많은 수행법이 택하고 있는 길이자 방편이다.  

하지만 호흡을 수련하기란 쉽지 않다.
망상과 망념이
호흡에 정신을 집중하는 걸 용납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호흡은 가장 근원적인 몸과 마음에 의지하고,
육체와 정신을 관장하고 영향아래 놓여있다.
호흡과 의식은 직접적으로 연결 되어 있기 때문에
호흡은 아주 중요하다.

호흡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자기 안에서 일어나는
가지각색의 생각들이
어떻게 떠오르고 사라지는지 관찰해야 하고
호흡을 통해서 마음을 비워나갈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심호흡을 이용하고
여기에 집중을 더해
단전호흡이라는 기법이 탄생 되었다.
단전호흡에서 가장 중요한 방법이 바로,
이 들고나는 숨을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바라보는 것이다.
참으로 간결하고 명쾌한 방법이지만,
그래서 오해도 많고 잡다한 군더더기도 많다.

대부분의 수련자들이 단전호흡을 한다고 하면서
핵심을 벗어나 주위만 빙빙 도는 것이 현실이다.
수련하는 사람들의 아랫배와 의식을 들여다보면
호흡을 바라본다 하지만
대부분의 수련자들이
호흡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관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설사 이해한다고 해도 바로 보지 못한 상태로
단전호흡을 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그래서 호흡법이 어렵다 한다.


2. 정기신 통일을 이루는 법 ‘바라보기’

정기신통일이 되지 못하면
아무리 깊은 호흡을 한다 해도 단전호흡이 아니다.
그냥 복식호흡이다.
호흡 속에 의식이 깃들어야 진정한 호흡이다.
이것이 바로 단전호흡과 복식호흡이 다른 것이다.
정기신통일의 기본 역시, ‘바라보기’다.
들고나는 숨을 바로 보고 놓치지 않아야
의식이 호흡 속에 녹아든다.
그러면 정기신이 단전에서 하나 된다.
그러면 열기가 난다.
단전이 뜨거워지는 것이다.
그 상태가 지속되면 뇌파가 가라 앉아
‘알파파’나 ‘세타파’ 상태로 들어간다.
그래야 진정한 ‘적적성성’이 된다.
이 상태가 계속되면 ‘파노라마’가 펼쳐진다.
정말로 보인다는 뜻이다.
그리고 정기신 통일이 깊어지면
환희와 희열의 상태가 일어난다.
즉 의식을 집중하여
단전에서 일어나는 호흡을 편안하게 지켜보면
호흡이 깊어진다.
이것이 ‘정기신통일 단전호흡’이다.  


3. 환희와 희열의 핵심도 ‘바라보기’

단전호흡이 깊어지면,
몸이 화평하고 땀이 촉촉이 나면서
온 몸의 모든 맥이 두루 돌게 되어,
마음이 텅 빈 것 같아
몸이 사라지고 있는지 없는지?
마음이 사라지고 있는지 없는지?
고요하고 아늑하며 환희와 희열이 일어나
황홀한 경지에 들게 드는데,
이것이 바로 우주 본래의 모습일 것이다.
바라보기가 제대로 되어야 환희와 희열에 쌓인다.
우주의 본질은 그저 ‘떨림’이고 ‘빔’이고 ‘뜻’이다.
이것은 환희와 희열이다.
이것을 일러 사람들은
사랑이라 하고 자비라 하고
자연이라 하고 자유라 하고
진실이라 하고 허공이라 하고
빅뱅이라 하고 블랙홀이라 하고
창조라 하고 소멸이라 한다.
하지만 모두는 그저 ‘떨림’이고 ‘빔’이고 ‘뜻’이다.
    

4. ‘바라보기’는 바로 보는 법이다.

선도의 수행법은
몸을 바라보고,
호흡을 바라보고,
마음을 바라보는 법으로부터 시작한다.
이것의 근본은 호흡으로부터 시작된다.
아랫배에서 일어나는 숨을
바라보고 느끼고 알아차리는 것이 ‘바라보기’다.

이것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몸을 보고 마음을 보고 근본을 볼 수 있으랴?
바라보지 못하면
아무리 호흡의 달인이라도 단열이 일어날 수 없고,
뇌파가 가라앉지 못하며,
적적성성으로 무아지경에 들 수 없고,
만화경이라는 파노라마가 열리지도 않으며,
환희와 희열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렇다고 이것이 단전호흡의 결과는 아니다.
이 모든 것은
단지 단전호흡 중에 일어나는 과정일 뿐이다.

단전호흡을 통해 우리가 얻으려는 것은
첫째가 정기신 통일을 통한 적적성성이며
둘째는 단열의 흐름을 통한 진실함이며
셋째가 바로 봄을 통한 지혜다.

이 모든 것은 바로 ‘바로보기’가 되어야
단전호흡이 일어나고
단전호흡이 일어나야
자신으로 돌아 올 수 있다.
이것이 호흡을 통한 수행법이다.

일부 사람들은 말하곤 한다.
단전호흡이나 복식호흡이 같은 것이라고....
기공호흡이나 요가호흡이나
단전호흡이 같은 것이라고...
그리고
수련은 눈을 뜨고 하는 거라고....
물론 맞다.
호흡의 기교가 문제가 아니라
어떻게 호흡을 한다 하더라도
숨과 뜻이 하나 되면 모두가 진정한 호흡이 된다.
수련은 본래 눈을 뜨고 하는 것이다.
의식이 밖으로 치닫기에 눈을 감고 수련하는 것이다.
의식이 온전히 내면을 향할 수 있을 때만
눈을 뜨고 수련하는 것이다.
심지어
단전호흡 하지마라는 무지까지 서슴치 않는다.
단전호흡은 너무 어려워 불가능한 것이기에
단전호흡하지 말라고 한단다.
물론 자기 수준에서 말하는 것이기에 탓할 순 없어도
무지를 자랑할 것까지는 없다고 본다.    

단전호흡이 어려운 것은 아니지만
쉽게 되는 것도 아니다.
위만 바라보고,
밖을 향해,
머리로 사는,
현대인이
아래를 향하고
내면을 향하고
가슴으로 살고
무심하게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울 수 있다.

단전은 아래에 있고
자신은 내면에 있다.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는
하늘을 알 수 없는 이치다.

단전호흡을 하려면
허리를 바로 펴고 가슴을 열어
긴장을 풀고 마음을 놓아야
숨이 아래로 내려온다.
밖으로 향했던 시선을 돌려
내면으로 들어와야
기운도 따라 내려온다.
현대인에게 가장 어려운 것이
바로 이 가슴이다.
현대인에게 참 어려운 것이 바로 내면이다.
하지만 자세를 바로 잡고 바라보기를 통해서
단전호흡을 이룰 수 있다.

잡념이 들고
마음이 산란하고
의식이 흐려진다면,
그걸 알아차리는 것이다.
이것이 관이고,
이것을 일러 마음을 닦는다 하고,
이것이 지혜로 가는 법이고,
이것이 공부다.

잡념이 많다는 것은
내가 그렇게 살아왔다는 반증이며,
내관이 어렵다는 것은
내가 외부로 향한 집착이 많다는 것이고,
호흡이 거칠다는 것은
번뇌 망상을 놓지 못한다는 것을
여실히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수련을 하고,
수행을 하는 것 아니겠는가?
보는 눈에 의식이 함께하고
깨어있는 의식에 뜻이 깃드니
작은 뜻에도 큰 울림을 열고
울림하나 우주를 진동하여
마침내 보는 것이 창조요.
의식하는 곳이 개벽이라.

자세를 바로 펴고
마음을 내려놓고
보면 다 보인다.
보이면 바로 하나가 된다.
이것이 핵심이다.

처음 내관을 하여 호흡을 하지만
처음부터 마음이 고요해지고
숨이 편안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가 살아온 습관이 있기에
눈을 감고 내관을 하려하고,
숨을 고르기 위해 편안코자 하지만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
그러나 정확한 내관법으로 숨을 고르다보면
어느덧 마음은 고요해지고 숨은 편안해지며
내면으로 의식과 눈이 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할 것이다.
이제 핵심을 알았다.
알았으니 하면 다 된다.    

심해의고요함으로 여행을 떠난다는 것.
미지의 세계를 향한 길을 탐구한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참으로 아름다운 여행인지......

우리가
이 세상에 다시 온다는 보장이 없다.
불확실하고 알 수도 없는 것이기에
하고 싶은 것 해 보고 살아야 한다.
자신을 알고 싶으면 탐구해 봐야 한다.
가고 싶은 길이 있으면 가보는 것이다.
후회 없이
그리고 이 생명 온전히 다하고 나서
이별을 고하자.
이 여행 마칠 때 후회 없도록 살자.
기절하지 말고 생생하게 깨어서 이 세상 떠나자.

지금 그대는 온전히 깨어 다 타고 있는가?
지금 깨어있는 자만이 깨어서 떠날 수 있기에,
여기서 모든 것 다 불살라야
이곳을 온전히 벗어날 수 있기에
지금 여기서 바로 깨어나야 한다.

그대여!
언제든 떠날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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